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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 동대문구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 꼭 가봐야 할 황실 역사 스폿

by hoi-know 2025. 10. 10.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자리한 영휘원과 숭인원은 대한제국 말 황실의 흔적을 고요히 간직한 묘역입니다. 영휘원은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 숭인원은 영친왕과 이방자의 장남이자 원손(元孫) 이진의 무덤입니다. 두 묘역은 함께 사적 제361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됩니다.

 


역사적 배경 1 : 순헌황귀비와 대한제국의 말기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궁녀로 입궁해 명성황후를 모시다가, 을미사변 이후 고종과 세자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아관파천)을 실질적으로 돕는 등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97년 영친왕(이은)을 낳았고, 근대 여성교육의 발전을 위해 양정의숙·명신여학교·진명학원 등에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1911년 서거했으며, 같은 해 영휘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역사적 배경 2 : 원손 이진과 숭인원의 조성

이진(1921.8.18.~1923.5.11.)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의 첫아들로, 세 살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했습니다. 그의 무덤이 바로 숭인원입니다. 이 묘역은 영휘원 경내에 함께 자리하며, ‘원손’이라는 칭호가 보여주듯 왕통 계승의 비극적 단절을 상징합니다.


지정·보호 현황과 행정 정보

영휘원·숭인원은 1991년 10월 25일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소재지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204-2 일대이며, 방문 정보는 계절별로 관람 시간이 다르고 매주 월요일 휴무(공휴일인 경우 익일 휴무)라는 점을 유의하세요. 주소 표기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청량리동)”로 안내됩니다.

 


입지와 공간 구성

현재의 묘역 일대는 본래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던 곳으로, 1919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현 홍릉·유릉)으로 이장하면서 지형과 경관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숲과 언덕이 어우러진 완만한 경사에 원침과 제향 공간이 단정하게 배치되어, ‘소박하지만 엄정한’ 황실 묘제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능과 원의 차이

우리 전통 묘제에서 왕·왕후·황제·황후의 무덤은 ‘능’, 왕세자·빈, 후궁, 종친, 황태자·비의 묘역은 ‘원’이라 부릅니다. 영휘원·숭인원은 따라서 왕릉이 아니라 ‘원’에 해당하며, 그에 맞춘 규모·형식·의장이 적용됩니다.

 


건축·조경 요소 읽기

묘역에 서면 반월형 병풍석이 봉분을 호위하고, 난간석이 경계를 정리합니다. 석호(호랑이), 석양(양), 문인석·무인석 등의 석물이 길을 지키며 제향로가 봉분 앞 혼유석과 상석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 왕실묘의 전형을 따르되, ‘원’의 위계를 반영해 규모와 장식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현장에서 석물의 표정과 비례를 관찰하면 시대미감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제향 시설과 동선

제향 시에는 향로·향합이 놓인 제기대와 제단, 헌작자·집례자의 위치가 분명히 구획되며, 재실(관리동)은 의식 준비와 관리의 거점이 됩니다. 방문객은 진입부에서 일직선으로 제향 공간을 마주하고, 봉분 앞에서는 좌우로 물러서며 관람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의례 구성과 배치 원리는 문화재청 자료 및 현장 사진 아카이브를 참고) 

 


명칭의 상징: ‘영휘(永徽)’와 ‘숭인(崇仁)’

‘영휘’는 ‘영원한 아름다운 덕(徽)’을 기리고, ‘숭인’은 ‘어짐(仁)을 높인다’는 뜻으로, 각각 피장자의 덕성과 유지를 기념하려는 황실의 호명 전통을 따릅니다. 특히 ‘숭인’은 짧았던 원손의 생애를 ‘인의’라는 이상과 결부해 추모하려는 의도를 담습니다. (명칭 해석은 전통 한자어 의미에 기반한 일반적 해석입니다.)

 


근대 서울과 황실 묘역의 변천

명성황후 홍릉의 이장은 일제강점기 서울 외곽 개발과 황실 공간의 재편과 맞물려 일어났습니다. 청량리 일대는 철도와 근대 시설이 집중되며 도시가 확장되었고, 영휘원·숭인원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답사 포인트 10가지

  1. 입구 표석과 안내판에서 전체 배치를 먼저 파악하기
  2. 봉분·병풍석·석물의 비례를 거리 두고 관찰하기
  3. 석호·석양의 조형 차이 사진으로 비교하기
  4. 혼유석 전면에서 제향 동선 상상해보기
  5. 영휘원과 숭인원 사이의 간격·축선 읽기
  6. 평일 오전 숲의 고요를 느끼며 천천히 걷기
  7. 비오는 날 석재 색감과 수문(雨痕) 관찰하기(미끄럼 주의)
  8. 사적 표지판에서 지정 사유·연혁 확인하기
  9. 인근 ‘홍릉수목원’과 연계 트레일 구성하기
  10. 기록 사진(옛 엽서, 박물관 아카이브)과 현장을 대조해 근대·현대의 변화를 체감하기


주변 역사 자원 연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근대기 황실 묘역 주변의 녹지 전통과 과학적 조경의 연속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동대문구 기억여행(디지털 아카이브): 영휘원·숭인원 관련 사진·문헌을 큐레이션해 현장 이해를 돕습니다.

 


연표로 정리하는 핵심 사건

  • 1854: 순헌황귀비 출생
  • 1895: 을미사변, 고종의 정국 변화 시작—엄상궁의 재입궁과 활동 본격화
  • 1897: 영친왕 탄생
  • 1903: 엄씨, 황귀비 책봉
  • 1911: 순헌황귀비 서거·영휘원 조성
  • 1919: 명성황후 홍릉, 남양주로 이장
  • 1921: 이진 출생
  • 1923: 이진 서거·숭인원 조성(일제강점기)\

 


현장 관람 팁과 매너

  • 조용한 관람: 추모 공간임을 잊지 말고 큰 소리는 자제합니다.
  • 보행 예절: 봉분·석물 가까이 올라서거나 기대지 않습니다.
  • 사진 매너: 삼각대는 동선 방해가 되지 않게, 다른 관람객을 배려합니다.
  • 자연 보호: 잔디밭·수목 훼손 금지,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기.
  • 우천 시 주의: 석재 표면은 젖으면 매우 미끄럽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의 오늘적 의미

이 묘역은 여성사·근대사 교육의 현장입니다. 순헌황귀비의 생애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정치 변동 속에서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진의 짧은 생애와 숭인원은 왕통의 비극적 굴곡을 상징하며, 오늘날 우리는 이를 통해 권력·근대화·식민의 충돌이 낳은 상처를 성찰할 수 있습니다. 시민 입장에서는 조용한 숲길을 따라 걷는 생활 속의 역사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답사 한 번으로 읽는 대한제국의 빛과 그늘

서울 동대문구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은, 도심 가까이에서 황실의 기억을 곱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입니다. 작은 규모지만 구성은 정교하고, 이야기는 깊습니다. 주소와 관람 시간만 챙기면 반나절 코스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답사가 가능합니다.